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/국가대표 경력 (문단 편집) === 지역 예선 === 사람들의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. [[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]] 지역 예선에서 브라질이 콜롬비아 원정에서 0-0 무승부밖에 거두지 못하자, 대표팀 감독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Cl%C3%A1udio_Coutinho|클라우지우 코치뉴]]는 32세의 노장이 된 카피탕을 대표팀에 불러오기로 결정했다. || [[파일:1977AlbertoFarewell.jpg|width=100%]] || || '''{{{#007000 1977년 3월 8일, 카피탕의 국가대표팀 복귀를 환영하는 셀레상}}}''' ||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1977년 3월 9일 히우지자네이루에서 진행된 콜롬비아와의 예선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복귀하였다. 카피탕 복귀의 효과는 단번에 나타났다. 브라질은 기세가 한껏 오른 모습을 보여주며 6-0 대승을 챙겼다. || [[파일:1977AlbertoinWorldCupQualifiying6-0vsParaguay.jpg|width=100%]] || || '''{{{#007000 1977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6-0 승리를 거둔 팀}}}''' || 그리고 카피탕은 파라과이 원정에서 진행된 그 다음 예선전에서도 브라질의 1-0 승리를 이끌었다. 브라질의 당락을 결정한 마지막 예선전에서는 파라과이를 홈으로 불러들여 좋은 수비를 펼치며 1-1 무승부로 귀중한 승점 1점을 벌어들여 브라질의 본선 진출에 기여하였다. || [[파일:1977LastCapforBrasil.jpg|width=100%]] || || '''{{{#007000 셀레상의 주장 완장을 차고 뛴 마지막 경기}}}''' ||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국가대표팀에 계속 남아서 [[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]] 본선에서도 선발 멤버로 활약할 예정이었다. 그러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가 종료된 이후 [[뉴욕 코스모스]]측에서 [[CR 플라멩구]] 측에 아우베르투를 영입하겠다고 제안을 보냈다. 플라멩구는 카피탕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.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는 산투스 시절의 동료 [[펠레]]&히우두와의 재회와 1978년 월드컵 출전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펠레&히우두와의 [[재회]]를 선택했고, 해외 선수를 국가대표팀에 잘 선발하지 않았던 당시의 풍조 때문에 아우베르투는 1978년 월드컵 본선에서 셀레상과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. 아우베르투는 1964년부터 1977년까지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 A매치 53경기[* 1968년에 열린 FIFA 올스타팀과의 경기를 제외하면 52경기]에 출전하여 8골을 넣었으며, 한 차례의 [[FIFA 월드컵]] 우승을 팀 캡틴으로서 달성해냈다. [각주] [[분류:브라질의 축구선수/커리어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